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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수전도단 연혁

데이비드 로스(David E Ross) 목사 부부가 미국 남 장로교 선교사로서 한국 파송

서울공대 기독 학생회 사역을 시작함

안식년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옴.

David E. Ross 선교사 부부가 안식년을 미국에서 보내는 중 애틀랜타 엠리 대학교에서 Jesus Movement (예수운동) 모임에 참석해서 성령세례와 성령 충만을 깨닫고 성령 세례를 경험하게 됨.

서울공대 기독학생회 사역을 다시 시작함.

연희동 로스 선교사 자택에서 대학생들과 화요일마다 모여 예배와 성경공부를 하였는데, 성령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고 이 모임이 현재 예수전도단 화요모임의 출발이 되었다.

화요모임을 종로2가 종로주단 건물 4층(당시 종로서적 옆)으로 옮겼고 150여 명 정도가 모임에 참석하였다.

로스 선교사와 임종표, 서상희, 이영혜를 포함해서 4~5명이 강원도 예수원을 방문하였고, 이후에 전도 팀을 구성해서 명동 예술극장 부근에서 찬양하고 전도지를 나누어 주며 전도모임을 시작하였다.

국제 YWAM(Youth With A Mission)이 한국에 들어와 단기 전도여행 사역을 하였다. 당시 독일 뮌헨 올림픽 전도여행을 마치고 한국 전도여행을 지원한 외국인180명이 한국에 입국하였고, 이들이 지방 각지로 전도여행을 떠났다.

국제 YWAM이 한국에서 영적지도자 세미나를 개최하였고 이를 계기로 로렌 커닝햄과 교제를 시작하며 이후 예수전도단과 지속적인 교제를 가짐.

11월 임종표, 서상희, 박현주가 강원도 산골마을로 1주일간 전도여행을 떠났고 이것이 예수전도단 전도여행의 시작이었다.

12월 겨울방학을 이용해 로스 선교사의 연희동 자택에서 3일 동안 13명이 전도를 위한 모임을 가졌다. 이것이 최초의 훈련 프로그램이었고 이후로 이것을'전도학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여름 2기 전도학교를 시작하여 25명의 젊은이들이 훈련받고 지방 각지로 흩어져서 실제로 전도여행을 하였다.

겨울 3기 전도학교가 강원도 예수원에서 있었으며 45명이 한 달간 Full Time Fellowship을 하며 훈련받았다.

직장인 전도학교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직장인들이 연희동 로스 선교사 사택에서 한 달간 기숙하면서 직장에 출퇴근하였고, 퇴근 후 저녁시간을 이용해 훈련받았다.

예수전도단은 주로 말씀과 중보기도, 찬양, 전도에 초점을 두면서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사역을 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화요모임을 통해 성령의 역사하심을 많이 경험하였다.

화요모임을 서울역에 자리하고 있는 여성절제회관으로 옮기고 이후에 명동 YWCA(1977년 후반부터1981년까지), 여성절제회관, 명지대학교 강당, 광화문 구세군회관 순으로 1990년까지 모임을 가졌다(그 후로 앰베서더 호텔 옆에 위치한 신광교회, 약수전철역에 위치한 신일교회, 영락교회, 현재는 강남 순복음 교회당에서 모임을 하고 있다. )

명동에 사무실이 생겼다. 이곳에서는 주로 소그룹 성경공부와 기도모임이 많이 있었다.
(직장인, 일반인, 대학생의 구분이 없이)

로스 선교사 가족이 미국으로 안식년을 떠남.

안식년 중 로스 선교사 가족이 하와이 코나 국제 YWAM의 훈련센터인 열방대학을 방문하였고 여기에서 6개월간 CDTS 훈련을 받음.

9월 24일 학개 2장 18절부터 19절 말씀을 약속의 말씀으로 확인받으며 국제YWAM과 예수전도단의 연합을 결심함.

1979년 말 David E. Ross와 Ellen E. Ross 선교사가 미국 남장로교 파송 선교사직을 사임함.

로스 선교사 안식년 기간 중 가을 사역을 셋으로 분리하여 - 대학생 사역(홍성건), 직장인 사역(현요한 · 최재선), 청소년 사역(김 여호수아) 개척을 본격적으로 시작함. 대학생들은 금요일, 직장인들은 월요일, 중 · 고등학생들은 목요일에 모임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정기적으로 각 사역별 전도학교가 진행되었다. 대학생들은 2월과 7월초에, 중 · 고등학생들은 7월말에 진행이 되었다. 매년 1월에는 3,4주의 전도학교가 진행이 되었다. 그 중 한 주간은 각 팀으로 믿음전도여행을 실시하였다. 매해 8월초에는 약 열흘간 여름전도여행을 진행하였다. 대체로 약 200명의 사람들이 참석을 하고 매번 5,000명 이상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다.

1980년 봄 한국의 대학가가 데모로 인하여 휴업하게 되어 대학생 사역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1989년부터 홍성건 형제가 대표직을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대학사역의 리더십을 이양하였는데, 임용순, 권기호, 변윤성을 거쳐서 현재 홍장빈 형제가 책임자로 사역을 하고 있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있은 국제 YWAM International Leadership Conference에서 로스 선교사를 한국 YWAM의 책임자로 임명하였고, 국제 YWAM과 예수전도단의 연합을 공식 선포함.(영어로는 YWAM, 한국어로는 예수전도단을 사용)

출판사가 등록되었다(당시로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1월 로스 선교사 가족과 11명의 YWAM 외국인 간사가 함께 입국함.

3월 역곡 미가엘 신학교에서 35명의 학생이 6개월간 첫 DTS를 시작하였다. 이때 훈련받은 35명 모두 당시 예수전도단에서 사역하고 있었던 간사들이었다. 강사로 조이 도우슨, 로렌 커닝햄, 존 도우슨, 딘 셔만 등이 왔고,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등지에서 전도여행이 행해졌다.

1기 DTS가 끝난 후에(9월) 간사들의 공동생활이 연희동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고 이후에 남산, 상도동, 종로 등으로 공동생활 집이 늘어났다.

1기 DTS를 마치면서 부산과 강주, 대구에 지부가 시작 된다.

로스 선교사와 함께 입국한 외국인 간사 11명은 DTS 훈련을 마친 후에도 2~3년 혹은 길게 10년씩 한국에서 사역하다 돌아갔다. 댄 뉴먼, 줄리안, 노마레이스 부부, 워렌 그렌트, 마크 챔버스, 메리 베스, 케더린 등이 있었다.

대규모적인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국제 YWAM의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참여하여 강의를 하였다.

미국 남 장로교 선교사를 사임한 후에 로스 선교사 가족은 비자 문제로 3개월 혹은 6개월에 한번씩 미국으로 비자여행을 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몇 달씩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예수전도단 안에 이미 위원(카운슬)들이 있었고 많은 사역의 결정권들이 위임되어 있었다.

첫 SBS(School of Biblical Studies; 성경연구)를 시작하였다.

1월 첫 번째 대학생 제자훈련학교(UDTS)가 종로 공동생활 집에서 시작되다.

8월 홍천 선교농장을 구입하고 사역을 시작하다.

미국인으로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비자발급 상황이 급격하게 어려워졌다.

9월 YWAM 25주년 기념행사를 정동 C.C.C회관에서 개최했다. 로렌 커닝햄, 조이 도우슨 등의 지도자들이 와서 강의를 하였고 이때 홍성건 형제를 한국 예수전도단의 부책임자로 세웠다.

1월 대만에 잠시 머무는 동안 하나님이 로스 선교사에게 북미와 유럽에 있는 한국인 2세를 위한 마음의 부담감을 주셨다.

8월 홍성건(현 예수전도단 대표)형제를 한국 예수전도단의 차기 책임자로 결정하고 사역을 위임함.

8월 로스 선교사 가족은 미국으로 출국함. 이후 로스 선교사(한국 이름: 오대원)는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에 머물며 대학생, 청소년 사역을 위한 안디옥 선교센터 사역을 시작하였고, 그 후 시애틀로 옮겨 안디옥 선교센터를 AIIM으로 개칭하고 한국인 2세 사역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첫 번째 직장인 제자훈련학교(BEDTS)가 시작되다.

9월 사단법인 예수전도단으로 문화공보부에 등록을 하였다. 당시로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하나님의 섭리였다. 초대 이사장에 문병현 장로를 세우고 고용수 목사에 이어 현재 홍성건 형제가 섬기고 있다.

1월 대만에 잠시 머무는 동안 하나님이 로스 선교사에게 북미와 유럽에 있는 한국인 2세를 위한 마음의 부담감을 주셨다.

8월 홍성건(현 예수전도단 대표)형제를 한국 예수전도단의 차기 책임자로 결정하고 사역을 위임함.

8월 로스 선교사 가족은 미국으로 출국함. 이후 로스 선교사(한국 이름: 오대원)는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에 머물며 대학생, 청소년 사역을 위한 안디옥 선교센터 사역을 시작하였고, 그 후 시애틀로 옮겨 안디옥 선교센터를 AIIM으로 개칭하고 한국인 2세 사역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첫 번째 직장인 제자훈련학교(BEDTS)가 시작되다.

9월 사단법인 예수전도단으로 문화공보부에 등록을 하였다. 당시로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하나님의 섭리였다. 초대 이사장에 문병현 장로를 세우고 고용수 목사에 이어 현재 홍성건 형제가 섬기고 있다.

2월 간사총회에서 한국에도 열방대학을 세우기로 모든 간사들이 결의하였다.

첫 번째 선교사 훈련학교(SOFM)가 역곡 새소망에서 시작되다.

킹스키즈 사역이 시작되어 책임자로 원 베네딕트 형제를 세우고 1989년부터 본부 사무실의 기획팀에서 진행하던 사역을 독립시켰다.

Target 2000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12종족을 Target하고 각 지부들이 담당을 하였는데, 많은 놀라운 열매들이 나왔다.

2월 간사총회에서 4년 후에 예수전도단 대표직을 넘겨주겠다고 홍성건 형제가 공식 발표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더 많은 젊은 세대가 지도력을 발휘하고 다양한 세대가 함께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데 이해를 가지고 결정을 하였다.

2월 간사총회에서 Target 2000을 Target 2020으로 새로이 명명하고 선교를 위하여 광범위하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2020년까지 최변방 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의 수 3500명, 52개의 종족, 52개의 관문도시 개척을 목표로 하였다.

2월 간사총회에서 문희곤 형제를 부대표로 임명하였다.

2월 간사총회에서 문희곤 형제를 한국 예수전도단 대표로 임명을 하였다.

전국 규모의 국내 선교대회 Open2005를 개최하였다.

해외 선교대회 Open2006을 이집트에서 개최하였다.
월 현재 한국의 간사는 전임간사 908여 명, 협력간사 591여 명 등이 사역하고 있다. 전국에 21개의 지부가 활동하고 있다.

열방대학 법인 분리

한국에서 Open 2007개최

강릉지부 폐쇄 (강릉지부 대학사역 명칭 춘천지부 대학사역 강릉팀으로 변경)

원주지부 개척팀 파송

본부와 서울지부 통합

군산지부와 전주지부의 통합 (전북 광역지부)

한국예수전도단 4대 대표로 김지태 간사의 임기 시작